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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 50년의 회고와 전망
권해조  -homepage 2016-04-13 14:38:45, 조회 : 2,795, 추천 : 448
              한일관계 50년의 회고와 전망

1. 서언
  이번 6월 22일 한일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는다. 지난 반세기 동안의 양국관계를 되돌아보고 향후 전망을 고찰해 본다.  
세계 2차 대전에서 일본의 패전으로 우리는 해방이 되었다.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배로 부터 벗어난 한국은 일본과 새로운 국가관계를 맺기 위해 1949년 1월 주일한국대표부가 설치되었다. 1951년 10월 20일부터 한일수교 예비회담을 갖고, 1952년 2월15일 1차 본회담을 시작하여 1965년 6월22일 제 7차 회담에서 기본관계조약을 가조인하였다. 그해 6월22일 도쿄에서 한일 기본관계에 관한조약과 4개 부속협정에 정식 서명한 뒤 1965년 12월18일 발효가 됐다  

2, 한일국교 협정경과와 의의
   한일국교 수교당시 반대시위는 격렬했다. 그러나 한일국교 정상화는 한일간 동의한 합의문서의 상징성 보다는 전후 14년에 걸친 오랜 교섭과 문제해결을 위한 타협의 산물이었다. 당시 한반도에서는 한국과 유엔참전국이 중공과 북한과 전쟁을 하면서 한일이 협력하면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 긴요하다는 인식아래 1951년 10월 20일 미극동연합군 총사령부(SCAP)회의실에서 외교국장 시볼트(Williiam J. Sebald) 주재로 에비회담이 열렸다. 53년 3차 회담에서 일측대표 구보타가 ‘일본이 한국을 점령하지 않았다면 중, 러가 점령했을 것이다.’라고 망언을 하여 결렬되었다. 3공화국인 62년11월 제6차 회담에서 청구건에 관한 오히라 수상과 김종필 중앙정보부장관의 메모(무상3억, 유상2억, 차관1억+@)가 있었다. 당시 평화선을 양보하고 일본이 주장하는 12해리 전관수역과 양국 어선이 공동으로 어로하는 공동규제수역의 설정여부로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옳고 그름은 후세 역사가들에게 맡기자 하고 국교정상화를 주장한’ 박대통령의 결단으로 이루어 졌다. 그 결과 1965년 2월20일 서울에서 열린 제 7차 회담에서 이동원 외무장관과 시이나(椎名) 외무대신이 기본관계조약 가조인을 하고, 그해 6월22일 도쿄에서 한일 기본관계에 관한조약과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해결과 경제협력, 재일교포 법적지위, 어업문제 및 선박반환문제, 문화제 반환문제 등 4개 협정에 정식 서명한 뒤 12월18일 발효하게 되었다. 1966년부터 10년간 대일청구권은 우리나라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다목적 댐 건설 등과 1, 2차 5개년 경제계혁의 주요재원이 되었다.  
  
3. 국교 정상화 이후 한일관계
  한일 양국은 수교이후 과거사로 인한 갈등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우호협력관계를 발전시켰다. 특히 4차에 걸친 대중문화 개방 등 양국 교류 협력증진을 위한 전향적정책을 실시하고 06년 3월 단기사증 항구적 면제 등으로 교역량과 인적교류도 증가되면서 양국관계가 지속적으로 확대, 심화 되었다. 그리고 양국정상의 상호방문, 정기 각료회담, 한일의원연맹, 한일친선협회, 한일포럼, 역사 공동연구위 개최와 대륙붕공동개발, 어업협정 등 많은 접촉이 있었다. 또한 1998년 21세기 새로운 한일파트너십 공동선언, 2002년 한일월드컵 공동개최, 2005 한일우정의해 등으로 욘사마 등 한류바람과 한국드라마가 일본방송에 각광을 받기도 하였다.

그리고 일본 고위급인사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도 있었다. 1965년 2월 시이나 외무대신이 ‘양국간 오랜 역사에 불행했던 기간은 참으로 유감스런 일로 깊이 반성한다.’는 성명을 발표했고, 83년 1월 나카소네 총리 방한하여 ‘양국간의 과거 불행한 역사가 있었던 것은 사실로 엄숙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84년 9월 전두환대통령 방일시 히로히토 일왕도 ‘금세기 한시기에 있어서 양국간 불행한 역사가 있었던 것은 진실로 유감으로 생각한다.’ 90년 노태우 대통령 방일시 아키히토 일왕도 ‘통석의 념을 금할 수 없음’이라 하였다. 이밖에 92년 미야자와 총리, 95년 무라야마총리, 98년 오부치 총리, 2010 간나오토 총리 등도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 사죄를 하였다. 또한 원폭피해자 구제, 군대위안부 지원, 사할린한인 영주귀국사업 등도 진전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일본의 역사교과서문제, 독도영토문제, 대북한정책에서 마찰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2005년 고이즈미 총리 야스쿠니 신사참배 후 한일관계가 일시 경색되었으나 07년 후쿠다 내각출범으로 올바른 역사인식이 한일관계발전의 근간이라는 인식하에 우호협력의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그러나 2012년 아베정부의 집권 이후 양국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4. 최근 한일관계 악화의 원인
   최근 한일양국관계 악화의 징후들은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먼저 한국 측에서 보면 무엇보다 아베정부의 계속적인 역사수정주의 발언이다. ‘침략에는 일정한 국제적 정의가 없다. 위안부 모집에 일본의 강제력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재검정해야 한다.’ 는 등 국교 정상화 이후 양국이 노력한 과거사 반성과 사죄의 기반을 흔들고 있다. 이에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도 종전 40-50%에서 2012년 30%에서 2015년 26%로 떨어지고 있다.

다음은 일본 측에서 보면 첫째는 한국의 지속적이고 끈질긴 일본의 사죄요구다. 일본천황의 방한에 반드시 과거사에 대한 사죄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한국의 강력한 주장에 일본 언론들은 일본이 ‘사죄피로감’에 빠져있다고 주장한다. 둘째로 한국이 일본이 저질렀던 과거 만행인 치부를 국제사회에 선전하는 행위다. 위안부 동상을 세계 곳곳에 세우며 위안부문제를 국제사회에 선전하며 일본을 비난 공격하는 행위가 일본인들의 반한감정의 주원인이라 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직접적인 원인은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 때문이다. 이는 일본에 대한 도발로 보고 있다. 일본인은 섬나라 기질로 주체성이 강하며 강자에는 굴복하고 약자는 짓밟으며 수치를 당하는 것은 최대 치욕으로 생각한다. 일본 국민들의 친한 감정은 2011년 62%에서 2012년 39%, 2014년에는 31%로 떨어졌다.

5. 새로운 한일관계 전망과 대책
  향후 한일관계의 해빙무드는 단기간에 조성되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 한일간 큰 이슈는 독도영유권문제와 과거사문제에 파생된 위안부 문제, 일본의 군사대국화 등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한일관계의 전부는 아니다. 한일관계는 보다 큰 국가운명, 안보 경제문제 등 여러 국익이 걸려있다. 독도문제는 우리가 실효적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단호히 대응해야하지만 필요이상으로 일본을 자극하지 말고 신중한 외교로 대응해야한다. 과거사 문제는 더 이상 들추지 말아야 한다. 흔히 과거사 문제를 독일을 비유하지만 독일과 일본은 다르다. 독일은 지배층인 나치가 패망했지만 일본은 전범 몇 명만 처형되고, 천황제도와 행정시스템이 그대로 보존되었다. 그리고 일본은 천황을 뿌리에 둔 황국사상의 정신구조와 전후 70년간 보수 자민당의 집권으로 우리의 요구대로 순순히 응할지 미지수다. 일본의 군사력강화도 유사시 우리 안보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앞으로 경색된 한일관계를 해결하고 미래발전을 기약하기 위해서는 정상회담부터 열려야한다. 그리고 국제관계에서 균형감각의 덕목이 가장 중요하다. 지난 3월 한일 외교장관, 5월23일 기획재경부 장관과 일본 아소다로(麻生太郞) 부총리겸 재무상, 5월30일 싱가포르에서 4년4개월 만에 한일 국방장관이 만나 정상회담 없이 발전적관계로 접어들고 있다.
최근 박대통령도 한일외교관계가 과거사 문제에 매몰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언급하고 워싱턴포스트(WP)지와 인터뷰에서 ‘위안부문제의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는 보도와 6 월22일 서울과 도쿄의 양국대사관에서 열릴 수교 50주년 기념 리셉션에 양국정상들이 참석예정 등 긍정적인 신호가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일관계는 분명한 목표와 방향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 지금 북한의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공격에 대비하기위한 한일간의 군사협력, 2012년부터 추진된 한일 군사정보협정(GSOMIA), 한일 상호 군수지원협정(ACSA), 해외평화유지군 협력방안 등도 발전시켜야 한다.

6. 결언
해방70주년과 한일수교 반세기를 돌이켜보면 우리나리의 지정학적 주변상황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는 동북아시아에 주요한 전략적 요충지이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와 같다. 자칫 방심하면 미중의 패권 다툼에 휘말리기 쉽다. 앞으로 대북관련 한미관계의 공고화와 한일관계 발전이 중요하다.  
일본은 21세기 이웃으로 살아갈 동반 국가이며, 한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파트너이다. 일본이 수교 후 조국근대화에 도움이 되었던 것처럼 앞으로도 기술협력과 교류가 필요하다. 양국이 계속 힘겨루기 감정싸움으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 우리도 더 이상 피해자의 입장에서 가해자의 탓만 해서는 안 된다. 하루속히 과거에 매몰된 식민 사관에 탈피해서 미래를 위한 자성의 사고전환이 필요하다. 지난 달 장관급회담에 이어 조속히 정상회담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부터 550년 전 조선 통신사로 다녀온 신숙주가 성종에게 남긴 ‘일본과의 화평을 깨뜨리지 마십시오.‘한 유언을 되새기며, 앞으로도 양국은 미래를 향해 상호 존경과 신뢰로서 진정한 협력관계를 공유할 성숙한 관계로 발전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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