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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레이와(令和)`시대 개막_권해조(학화 고문)
관리자  2019-05-01 15:18:28, 조회 : 715, 추천 : 187
                                       일본 ‘레이와(令和)시대’ 개막
                          - 일왕(日王)과 연호(年號)에 관한 소고(小考) -

                                                                                                  권해조(한일군사문화학회 고문)

 

일본은 4월 30일 제125대 아키히토(明仁:86) 왕이 퇴위하고, 5월 1일부터 나루히토(德仁:59) 왕세자가 제 126대 일왕으로 즉위하였다. 그리고 지난 30년간 중국 고전에서 따온 ‘나라 안팎과 천지의 평화가 이뤄진다’는 헤이세이(平成: 1989-2019) 연호시대를 끝내고, 8세기 일본 고대 시가집 만요수(萬葉集)에 나오는 초봄 영월(令月: 상서롭고 좋은 달)에 바람은 부드럽다(風和)라는 문구를 따온 레이와(令和) 연호시대가 시작되었다.

전임 아키히토 일왕은 1933년 12월 23일 부친인 히로히토(裕仁) 일왕의 4녀1남의 막내로 태어나서 학습원대(學習院大) 정치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유년기 이름은 츠구노미야(繼宮)로 1952년 11월에 황태자의 지위를 국민들에게 알리는 입태자식(立太子式)을 거행하였고, 1959년 4월 평민인 일청제분(日淸製分) 사장의 장녀 쇼다 미치코(正田 美智子)와 결혼하여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1989년 1월 7일 히로히토(裕仁) 일왕 서거 직후 쇼와(昭和)연호시대를 마감하고 제125대 일왕(天皇)으로 즉위하여 헤이세이(平成)시대 30년간 왕위를 지켜왔다.

신임 나루히토(德仁) 일왕은 1960년 2월 23일생으로 1991년도에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학습원(學習院) 초, 중, 고등과와 1982년 학습원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천황계승자 최초로 83-85년에 영국 옥스퍼드대학에 유학했다. 1993년 6월9일 오와다 외무사무차관의 장녀 오와다 마사코(小和田 雅子)와 결혼해 슬하에 딸 아이코(愛子) 경칭 토시노미야(敬宮)를 두고 있다.

일본의 국가형태는 입헌군주제이며 국가원수는 천황이다. 일본은 국가원수를 고대 중국 군주의 칭호를 본받아 덴노(天皇)라 부르고 연호(年號)를 와레키(和曆)로 부른다. 그리고 정부형태는 내각책임제로 집권당 당수가 총리를 맡으며, 현재 자민당 당수인 아베신조(安倍晋三)가 총리다. 그리고 의회는 양원제로 중의원(衆議院: 하원) 480명에 참의원(參議院: 상원) 242명이다. 1889년 2월 11일 공포한 구헌법인 대일본제국 헌법(일명 ‘明治헌법’)에는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萬世一系)의 천황(天皇)이 통치하며, 통치권의 총람자(總攬者)다’ 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인 1946년 11월 3일 미군정하에 개정된 현행 헌법에는 일왕은 국가와 국민통합의 상징이며(헌법1조), 헌법에 정해진 일정한 국사행위(國事行爲)이외 국정(國政)에 관한 권리의 주장과 행사는 불가(헌법 제4조)하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엄정한 중립과 어떠한 정치문제에도 불관여하고, 천황 및 황족은 선거권과 피선거권도 불보유하도록 명시하였다. 또한 국사(國事)에 관한 천황의 모든 행위는 내각의 조언과 승인을 필요로 하며, 그 책임은 내각이 보유하도록 하였다. 이로서 천황은 총리와 최고재판소 소장 임명, 헌법 개정, 법률 및 조약의 공포, 국회소집, 중의원 해산, 국회의원 총선거 시행의 공시, 국무대신 및 법률이 정하는 관리 임면, 대사 및 공사의 신임장 인증, 사면, 특사, 감형, 형 집행 면제 및 복권의 인증, 영전(榮典)수여, 기타 법률이 정하는 외교문사 인증, 외국대사 및 공사의 접수 등 형식적인 의식 임무만을 수행한다.

기록상의 최초 일본 천황은 일본서기(日本書紀: 720년 완성)에 명시된 기원전 660년 신유년(辛酉年)에 즉위한 초대 진무(神武)천황이다. 그러나 실제로 천황제가 성립된 것은 7세기 중엽 야마토(大和)시대의 후기 아스카(飛鳥)시대에 다이카(大化) 개신(改新)을 통하여 다이카(大和)연호를 사용하면서 부터이며, 천황은 현인신(現人神)이라 불릴 만큼 최고유일(最高唯一)한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그 후 중. 근세에 와서 귀족(貴族)과 무인(武人)정치체제로 인해 천황의 지위가 저락했다가,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으로 중앙집권체제가 확립되면서 다시 왕권이 확립되었다. 20세기에 와서 군부와 우익세력에 의해 더욱 천왕의 신격화(神格化) 작업이 진행되었으나,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쇼와(昭和)천황의 「인권선언」을 계기로 천황의 신성이 부정되고 국가와 국민통합의 상징적 존재로 규정되고 있다. 한편 122대 메이지(明治) 천황은 121대 고메이(孝明) 천황의 서자로, 이름은 무쓰히토(睦仁)이며, 유년기 궁호는 사치노미야(祐宮)이다. 123대 다이쇼(大正)천황의 이름은 요시히토(嘉仁)이며, 유년기 궁중이름은 하루노미야(明宮) 이다.

이번에 퇴위한 125대 헤이세이(平成)천황은 재임기간이 30년(1989-2019)이었다. 조부인 123대 다이쇼(大正)천황 15년(1912-1926) 보다는 길지만, 증조부인 122대 메이지(明治)천황의 45년(1868-1912), 부친124대 쇼와(昭和) 천황의 64년(1926-1889)에 비하면 짧은 편이다. 특히 그는 부친이 남긴 태평양전쟁의 어두운 유산을 정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는 작년 12월 23일 85세 생일기념일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헤이세이(平成)가 전쟁이 없는 시대로 끝나게 되어 마음으로부터 안도가 됩니다. 헌법에 따라 정치적 권한이 없는 상징 천황의 바람직한 자세를 추구해 왔으며, 양위의 날까지 그런 자세로 일상 업무를 수행 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일본의 위안부문제, 난징대학살 등 전쟁범죄를 언급하면서 역사를 올바르게 전하기에도 관심을 표명했다. 그리고 천황이란 칭호와 달리 단순한 상징적 존재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특히 여러 차례 평화와 반전(反戰)에 거는 마음을 술회하면서 우경화 일변도의 아베정권을 견제하였다. 그리고 지난 2월24일 도쿄 국립극장에서 개최된 자신의 마지막 재위기념식에서 “일본은 성의를 갖고 타국과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으며, 4월30일 도쿄 고쿄(皇居)에서 거행된 퇴위식에서도 “상징(일왕)으로 받아주고 지지해준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새 레이와 시대가 평화롭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헤이세이 천황은 재임기간 「전쟁책임」이라는 부친의 굴레를 의식한 듯 매년 종전기념일(패전일)에 도쿄 중심에 있는 부토칸(武道館)의 전몰자 추도식에서 “과거를 돌이켜보며 깊은 반성과 함께 앞으로 전쟁의 참화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혀왔다. 또한 오키나와, 사할린, 팔라우, 필리핀 등의 2차 대전 격전지와 중국을 방문하여 전쟁희생자를 추도했고, 사이판에서 한국인 전몰자 위령비도 참배했다.

그는 1990년 노태우 대통령 방일시 일왕가문과 한국과의 관계를 말하고, 2001년 12월 기자회견에서 간무(桓武:737-806)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 자손이라며 ‘속일본기(續日本記)’내용을 언급하며 한국과의 연(緣)을 강조하고 한국에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그러나 재임기간 한국방문을 수차례 염원했지만 이루지 못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제119대고카쿠(光格) 일왕이후 202년 만에 사후승계관례를 깨고 생전퇴위를 퇴위를 하였다. 그리고 아키히토(明仁) 상왕은 일본의 처음으로 현행헌법아래서 즉위하여 처음부터 신이 아닌 인간인 일왕으로 출발했다. 그래서 그는 1959년 평민출신 쇼다 마치코(正田 美智子)와 결혼 하였다. 새로 즉위한 마루히토(德仁) 일왕은 1960년 전후(戰後)세대 태어난 첫 일왕이지만 부친과 마찬가지로 평민과 결혼하였고 '평화와 호헌'을 주장해 왔다. 그리고 개혁적이고 소탈한 성격으로 일본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전후(戰後)세대로 전쟁에 대한 부채의식이 선왕보다 약하겠지만 외국유학경험으로 리버럴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2007년 도쿄에서 개최된 '한중일 우정의 가교 콘서트 2007'에서 정명훈 씨와 비올라를 연주하며 양국우호를 호소하기도 했다.

한편 만요슈(萬葉集)연구의 일인자인 나카니시 스스무(中西進:89) 교수는 새 연호 레이와(令和)는 ‘아름다운 조화(beautiful harmony)’의미로 고대 백제문화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 졌다고 하였다.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퇴임과 나루히토(德仁) 새 왕의 등극을 축하하며, 앞으로 한일관계발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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